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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10년 11월 04일 10시 11분
    제목 정문형(鄭文炯, 1427 - 1501)
    내용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명숙(明叔), 호는 야수(野??)이며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직산(稷山)현감을 지낸 속(束)의 아들로 개국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의 증손이다. 세종 29년(144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가 된 후 감찰과 주서(注書)를 거쳐 단종 원년(1453)에 예조좌랑이 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 궁궐내에서 회음(會飮)한 죄로 장형(杖刑)에 처해졌다. 그러나 세조 원년(1455) 교리(校理)로 발탁되어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훈되고, 이후 사간(司諫)을 거쳐 세조 6년 예조정랑으로 가례색도감낭청(嘉禮色都監郞廳)을 겸직하였다가 이어 사인(舍人)이 되었다. 세조 10년 한성판윤(漢城判尹) 공조참의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는데, 익년 진주(晋州)에 있던 소훈(昭訓) 윤씨(尹氏)의 모친병환을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당하였다.

    세조 12년 함길도절도사(咸吉道節度使)와 변정원(辨定院:掌隸院)의 판결사(判決事)를 거쳐 이듬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성종 3년(1472) 병조참판에 이어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가 성종 6년 형조판서로 내직으로 들어온 후 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으나, 성종 10년 윤씨(尹氏) 폐비(廢妃)에 반대, 사직하였다. 성종 18년(1487)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우참찬(右參贊)을 거쳐 성종 20년 이조판서가 되었으나, 아들 숙서(叔ы)를 사재감 정(司宰監正)에 임명하면서 상피(相避)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았다. 이어 호조판서 세자시강원빈객(世子侍講院賓客)을 거쳐 경상도순변사(慶尙道巡邊使)가 되어 각 지방의 방어상태를 순시하고 성종 23년(1492) 우찬성에 올랐다.

    연산군 즉위년(1494) 공조판서로 산릉도감 제조(山陵都監提調)를 겸직하여 성종의 국장의례 및 능의 축조를 담당하였다. 이듬해 판중추부사가 되고 연산군 2년(1496) 우의정에 올라 궤장(?ㅽ?)을 하사받았으나 탐학한 재상이라는 이유로 대간의 탄핵을 받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체임되었다. 시호는 양경(良敬)이고, 묘는 과천현 문원리(현 과천시 문원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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