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0년 11월 04일 10시 55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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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사립(崔斯立) |
내용 |
조선시대의 효자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막계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입지(立之). 한성부윤을 지낸 사위(士威)의 5세손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결(潔)의 아들이다. 과천군 막계리 농막에 세거하였으며, 가세가 곤궁하여 송진으로 불을 밝히며 밤에도 경서(經書)에 열중하였을 뿐 아니라 항상 독서로 일관하여 학자들이 존경하였다. 경서 가운데 『소학(小學)』을 자신의 행동강령으로 삼아 부모를 모시는 데 전력하였다. 평소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여 병을 얻자, 아버지의 소원대로 엄동설한에 구하지 못하는 갈화탕(葛花湯)을 구하기 위해 수 십 일을 기도하니 이에 하늘이 감동하여 집안에 갈화를 만개(滿開)시켰다. 그리하여 이를 채취하여 갈화탕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바치니 병이 나았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서도 남과 달리 소홀함이 없었고 여막(廬幕)을 지어 3년상을 치르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성묘하며 통곡하였다. 중종 9년(1514)에 효행으로 참의에 추증되고, 중종 30년(1535) 경기도관찰사 윤은필(尹殷弼)이 다시 장계를 올려 포상할 것을 청하였으며, 선조 7년(1574)에는 효정(孝旌)을 명하였다. 그의 효행에 대한 기록은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기록되어 있다. 벼슬은 음직으로 배천(白川)군수를 역임하였고, 시에 능통하였다. 효정문(孝旌門)은 현재 천안군 입정리에 있는 전주 최씨 12효정에 위치해 있으며, 문원동에 살고 있는 그의 후손 종수(鍾洙)도 정려의 현액을 보관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孝子通訓大夫行白川郡守崔斯立之門으로 되어 있다. 묘는 과천현 막계리에 있었으나 신도시개발로 인하여 1979년 용인군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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