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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10년 11월 04일 10시 13분
    제목 정숙서(鄭叔壻, 생몰년대 미상)
    내용

    조선 초기 문신으로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개국공신 도전(道傳)은 고조이며, 직산(稷山) 현감를 지낸 속(束)은 조부이다. 우의정을 지냈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祿選)된 문형(文炯)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동래(東萊) 정씨 정랑(正郞) 길흥(吉興)의 딸이다.

    일찍이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사옹원(司饔院) 직장(直長)을 지냈으며, 후에 공조좌랑, 수원(水原)판관을 역임하였다. 왕의 명을 받들어 충청도의 서천포(舒川浦)에 가서 수령과 만호(萬戶)들의 불법을 적발하였으며, 내직으로 돌아와 도감낭청(都監郞廳)이 되었는데, 춘궁(春宮:세자궁)을 수리할 때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인해 벼슬이 뛰어 제용감(濟用監) 정(正)에 제수되었고, 사재감(司宰監) 정으로 전직되었다.

    사재감 정으로 있을 때 아버지인 문형이 이조판서로 있었기에 상피(相避)에 해당되어 어쩔 수 없이 관직을 낮추어 부정(副正)이 되었다. 통례원 좌통례(左通禮)로 충청도 경차관(敬差官)이 되었고, 돌아와 장예원 판결사(判決事)를 제수받았다. 공조참의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하였는데, 관찰사 시절 부친의 나이가 높아서 체직을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부친이 병으로 들어눕게 되자 돌아와 공조참판을 제수받았다. 이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직을 옮겨 형조 호조 참판을 지냈다. 제용감 제조(提調)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겸임하였다. 묘는 과천현 별왕리(別旺里:현 과천시 문원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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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이천(李??, 생몰년대 미상) 2010.11.04 6275  
    25 정숙서(鄭叔壻, 생몰년대 미상) 2010.11.04 6212  
    24 정문형(鄭文炯, 1427 - 1501) 2010.11.04 6556  

    담당자 : 문화체육과 허보미 (02-3677-2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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