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여성근로자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만나보세요

관리자  []  2019년 09월 03일

내용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여성근로자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회상> 아이들: 할머니, 우리는 초등학생기자단입니다. 옛날이야기를 듣고 싶어 왔어요! 할머니가 제 나이였을 때 무얼 하셨는지요? 호호~ 할머니: 할머니도 너희들처럼 명랑하고 쾌활한 아이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좋은 세상은 아니었단다. 일제감정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던 시기였어. <동원> 할머니: 어느 날 면사무소에서 나와 친구들을 강제로 동원한다기에 급하게 달려갔어!  일본군: 거기 학생들 빨리 뛰어와! 어서! 과거의 할머니와 친구들 : 어? 네네... 갑니다!!. 갑자기 문이 꽝! 하면서 닫힌다. 일본군: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해! 과거의 할머니: 에그머니나 일본군: 자랑스러운 우리 황군이 대성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다!! 너희들도 근로정신대에 지원해서 천황폐하의 은덕에 보답하자!! 지원하는 사람은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과거의 할머니: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게 진짜인가요? 일본군: 당연하지! 지금 기회를 줄테니 당장 지원해라!! 자! 그럼 모두들 지원하는 것으로 알겠다! 나이와 체격을 측정하여 근무지를 선정한다. 과거의 할머니: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근무지를 선정한다구요? 할머니 친구: 난.. 일본으로 가야한대!! 흑흑흑.. 과거의 할머니: 아..안돼!! 친구야! 할머니: 나는 트럭으로 이동하여 광주 광천동의 방직공장에 가게 되었고, 내 친구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게 되었어.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족들과 이별하게 되었지. 과거의 할머니: 엄니, 아부지!!!!!! 미안해요! 할머니: 내 친구는 부산에서 배를 타고 10시간 동안 이동해서 일본의 후지코시 공장에 가게 되었어. 공장에서는 비행기 부품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대. 할머니 가족: 아이고 우리 딸! 흑흑흑.. 과거의 할머니: 엄니, 아부지! 금방 다녀 올게요. 흑흑흑.. <노동> 할머니: 친구는 공장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 업무 적응을 위한 훈련(군사훈련과 유사함)을 받았다고 했어! 약 두 달의 훈련을 받은 후 노동에 투입되게 되었는데, 식당에서 주는 밥은 넉넉지 않은데다가(보리밥에 미소장국, 단무지), 공습이 올 때는 빵만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 과거의 할머니: 너무 힘든데... 먹는 것도 부실하니 더 힘들어! 할머니: 나는 일본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들과의 면회나 외출은 가능했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 할머니의 엄마: 어..엄마다 지금 너무 힘들지? 훌쩍 훌쩍.. 과거의 할머니: 엄마.. 너무 힘들어 가고싶어!! 일본군: 야! 조센징!! 한 눈 팔지 말고 일해!! 과거의 할머니: 헉!! 네네 알겠습니다! 할머니: 나는 삼을 기계로 절단한 후, 자루에 담는 일을 2년 동안 하게 되었어!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한국인이었고 관리자는 일본인이었지. 2년 동안 일을 하면서 공부는 커녕 임금도 지급받지 못했어! 공장 근처에는 기숙사가 있었는데 한 방에 12명이나 같이 생활해야만 했어. 그 당시 함께 동원 된 소녀들이 아주 많았거든. 아침 여섯시경 복도로 관리자가 다니면서 종을 치면 기상을 해야했어. 땡땡 기상! 과거의 할머니: 아 너무 피곤하다!! 할머니: 일주일 내내 일을 하였지만 휴가는 없었고,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여덟시까지 하루 종일 일해야만 했어! 일본군: 졸지 말고 일하란 말야! 퍽! 퍽! 과거의 할머니: 아.. 알겠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데.. 양이 너무 적어. 배고파!!) 할머니: 제일 힘든 건 배고픔이었어. 너무 배가 고파서 땅에 떨어진 것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하면 그것조차 못 먹게 하더라고. 일본군: 팍팍!! 더럽게 바닥에 떨어진 밥을 먹다니! 과거의 할머니: 흑흑..그치만 배가 너무 고파요.. 할머니: 열악한 환경과 청결하지 못한 생활로 인해 옴이 생겨 고생도 했었단다. 과거의 할머니: 아 너무 간지러 으.. 긁적 긁적 할머니 기숙사 인원들: 옴이 옮았어! 간지러워!!!! 할머니: 집에 편지를 쓰게 하였으나, 내용을 감시하여,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내용을 강제로 쓰게 하였지. 일본군: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로 바꿔라 당장!! 과거의 할머니: 흑흑..네... 알겠습니다! 과거의 할머니: 저 사감님, 질문있습니다. 여기 온 지 6개월이 지났는데 학교는 언제 가나요? 그리고 노임은 언제 받는지요? 일본군: 그냥 기다리면 다 해준다!! 할머니: 사감과 면담했을 때 학교도 보내주고 노임도 준다고 했지만 그건 말뿐이었어! 솜 짜는 공장에서 근로하던 사람들은 먼지로 인해 폐병에 걸리기도 하였어! 공장 근로자: 커허허허헉! 공장 근로자들: 어...언니!! <전시> 할머니: 해방이 되던 해 여름에는 비행기 공습이 자주 있었어! 나와 친구들은 방공굴에 숨어 죽지 않기만을 바라야 했지! 일본군: 애애애애애애애앵!! 방공굴로 들어가 어서!! 콰아아아아앙!!! 할머니: 그리고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떨어졌지! 그로 인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잿더미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뉴스: 치이이익!! 지금부터 천황폐하의 중대한 발표가 있겠습니다. <해방> 할머니: 일왕 히로히토가 1945년 8월 15일 정오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어. 뉴스: 치이이익!! 타국의 주권을 배척하고 영토를 침범하는 것과 같음은 본디 짐의 뜻에 없으며... 교전을 계속하고자 함이 마침내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 아니라 나아가 인류의 문명마저도 파각할 것이라... 제국정부로 하여금 공동선언을 수락하기로 한다. 할머니: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어 드디어 나도 집으로 갈 수 있었지! 민족들: 대한독립만세!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과거의 할머니: 해...해방이라고? 그럼 우리 엄니, 아부지 보러 갈 수 있는거야? 해방이다!! 만세!! 엄니, 아부지! 흑흑흑흑! 할머니 가족: 흑흑흑... 무사해서 다행이다! 울 딸! 많이 힘들었지? 흑흑! 할머니: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어, 곧 이어진 한국전쟁 때는 반동자로 몰려서 고생을 했었단다. 남자: 반동자를 잡아라!! 후다다다다 할머니: 스무 살이 넘어 결혼을 하게 되었지. 당시에 일본에 갔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남편과의 관계가 안 좋았던 사람들이 많았어. 과거의 할머니 신랑: 부인은 일본에 끌려가지는 않았다지요? 과거의 할머니: 네...  과거의 일본에 갔다온 친구의 신랑: 일본에 끌려 갔었다는 게 사실이야? 과거의 일본에 갔다온 친구: 난.. 난 아무 잘못도 없다구요. 사람들: 일본에 다녀왔다구? 일본에 다녀왔대! 과거의 할머니: 나는 다섯 자녀를 꾸렸지만, 남편과는 42세 때 사별하게 되었어. 과거의 할머니: 흑흑흑!! 여보 이렇게 가면 어떻게! 자식들: 앙앙앙~~~아부지~~~

<전시> 할머니: 해방이 되던 해 여름에는 비행기 공습이 자주 있었어! 나와 친구들은 방공굴에 숨어 죽지 않기만을 바라야 했지! 일본군: 애애애애애애애앵!! 방공굴로 들어가 어서!! 콰아아아아앙!!! 할머니: 그리고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떨어졌지! 그로 인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잿더미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뉴스: 치이이익!! 지금부터 천황폐하의 중대한 발표가 있겠습니다. <해방> 할머니: 일왕 히로히토가 1945년 8월 15일 정오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어. 뉴스: 치이이익!! 타국의 주권을 배척하고 영토를 침범하는 것과 같음은 본디 짐의 뜻에 없으며... 교전을 계속하고자 함이 마침내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 아니라 나아가 인류의 문명마저도 파각할 것이라... 제국정부로 하여금 공동선언을 수락하기로 한다. 할머니: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어 드디어 나도 집으로 갈 수 있었지! 민족들: 대한독립만세!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과거의 할머니: 해...해방이라고? 그럼 우리 엄니, 아부지 보러 갈 수 있는거야? 해방이다!! 만세!! 엄니, 아부지! 흑흑흑흑! 할머니 가족: 흑흑흑... 무사해서 다행이다! 울 딸! 많이 힘들었지? 흑흑! 할머니: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어, 곧 이어진 한국전쟁 때는 반동자로 몰려서 고생을 했었단다. 남자: 반동자를 잡아라!! 후다다다다 할머니: 스무 살이 넘어 결혼을 하게 되었지. 당시에 일본에 갔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남편과의 관계가 안 좋았던 사람들이 많았어. 과거의 할머니 신랑: 부인은 일본에 끌려가지는 않았다지요? 과거의 할머니: 네...  과거의 일본에 갔다온 친구의 신랑: 일본에 끌려 갔었다는 게 사실이야? 과거의 일본에 갔다온 친구: 난.. 난 아무 잘못도 없다구요. 사람들: 일본에 다녀왔다구? 일본에 다녀왔대! 과거의 할머니: 나는 다섯 자녀를 꾸렸지만, 남편과는 42세 때 사별하게 되었어. 과거의 할머니: 흑흑흑!! 여보 이렇게 가면 어떻게! 자식들: 앙앙앙~~~아부지~~~ <현재> 할머니: 그동안 살기가 어려웠지만 바느질 공장을 다니면서 자녀들을 길렀지! 우리 애들에게는 마음에 부담이 될까봐 내가 근로정신대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과거의 할머니: 열심히 일만 하자! 울 애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자!! 할머니: 신촌에 있는 노인학교에 다니면서 교육 프로그램 등을 들으며 공부를 시작했지! 너무 재미있더라구! 선생님: 자 따라해보시죠 가나다라마바사 과거의 할머니: 가나다라마바사 이제서야 글을 배우는구나! 할머니: 고등학교에서 근로정신대에 관한 강연도 했었고. 과거의 할머니: 근로정신대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볼까요!! 근로정신대에 대해 이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카메라: 찰칵!! 찰칵!! 찰칵!! 할머니: 도청에서 기자회견도 했었던 경험이 있네! 아이들: 할머니...그럼 일본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셨나요? 할머니: 그럼 얘기하고 또 얘기했지, 일본에 가서 재판도 했단다. 일본은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어! 임금이라면서 500원짜리 껌 두 개 정도 사먹을 수 있는 99엔을 주더라! 내 잃어버린 시절을 돌려받을 수도 없는데, 일본에게 진실한 사과 한마디를 받는 것이 그렇게 어렵더구나! 그래도 내 맘대로 한글도 쓸 수 있고, 자유롭게 다닐 수도 있어, 얼마나 좋아? 난 요즘 12살로 되돌아간 것 같아!! 위안부나 근로정신대 모두 피해자이니, 떳떳하게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받아내야지! 그럼, 그렇구말구!! 웹툰 끝. <사진자료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1. 1944년 6월 여자정신대 사진 2.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제4기숙사에 도착 입소한 여자근로정신대원들과 맞이하는 관계자들 사진 3. 감독관으로부터 지시사항 받는 모습 사진 4.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제4기숙사에 도착 입소한 여자근로정신대원들과 맞이하는 관계자들 사진 5.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강제노역한 근로정신대 소녀들 연합뉴스자료 사진 6. 후지코시 기숙사 내부 사진 7. 후지코시 기숙사 앞에서 사감장과 관계자들에게 인사하는 소녀들 사진 8. 후지코시 현장 사진 9. 조선여자근로정신대 51해군항공조병창 1945년 사진 10. 후지코시 군대식 제식훈련하는 소녀들 사진 11. 미쓰비시 나고야항공기제작소 아쓰타신궁 인솔하는 사감장을 따라 행진하는 소녀들 사진 12. 미쓰비시 나고야항공기 제작소 사진 13. 미쓰비시 아이치현 호국신사 신사참배하는 여자근로정신대 소녀들 사진 14. 미쓰비시중공업 사감방 기념사진 사진 끝.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여성근로자 실태조사 연구 용역. 새로운경기 공정한 세상 경기도청과 (재)한국산업관계연구원이 함께 합니다. 작화: 박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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